나라는 사람/취미생활

건축학도 시선에서 풀어보는 영화 "더 메뉴"

ve_ryung 2023. 4. 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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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있습니다.

※ 이 리뷰는 "더 메뉴"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슬로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퀸스 갬빗에서 인상 깊었던 안야 테일러조이가 2022년 하반기에 "더 메뉴"라는 영화로 다시 등장했다. 퀸스 갬빗을 무척 흥미롭게 보았던 나는 더 메뉴도 궁금해졌다. 더 메뉴의 예고편의 앞부분을 잠깐 보면 내가 어릴 적부터 수차례 봐왔던 라따뚜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라따뚜이처럼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않는다. 이 영화는 한 요리사의 낭만이 세상으로 부터 짓밟힌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요리사의 낭만이 짓밟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영화를 보면서, 본 직후에 든 생각이 아니다. 영화의 초반부, 중반부에 요리사는 굉장히 강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모습에 거부감이 드는 반면, 레스토랑에 초대받은 고객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동정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후반부에 나에게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보여지고 요리사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전개되면서 영화가 끝나고 곱씹어보면 이 요리사의 상황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의해서 자신이 짓밟히는 줄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더 메뉴는 슬로윅이라는 요리사가 요리 비평가, 유명 연예인, 부자 등을 자신의 레스토랑에 초대하면서 시작한다. 레스토랑은 외딴 섬에 위치하여 거기서 직접 재배하고 공수한 재료들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 곳으로 저녁 한 끼에 상당한 돈이 드는 레스토랑이다. 

현재에는 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식사를 할 수 있는 유명 레스토랑의 요리사이지만 슬로윅은 자신의 직업에 회의적이고 자신에게 완벽한 요리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손님들에게 분노를 갖고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대접하고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한다. 

 

 

 

 

한 때 슬로윅은 작은 식당에서 햄버거를 파는 요리사였다. 유명하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치즈버거를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짓던 요리사였다. 그런 그가 유명 음식 비평가들과 부자들의 요구에 맞게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슬로윅은 자신이 왜 요리를 시작했는지. 어떤 요리를 하고 손님들이 어떤 반응을 해주었을 때 자신이 만족스러웠는지는 잊은지 오래였다. 

 

 

 

 

슬로윅의 이런 과정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게되는 이야기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경력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끊임없이 '조언'이라는 포장하기 좋은 단어에 넣어서 던진다. 그들의 의도가 좋았던 아니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얘기를 계속해서 듣는 우리들은 과연 우리가 내 생각이 흔들리지 않은 채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지 봐야한다. 

자신의 생각이. 가치관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신의 삶과 목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까먹은 채로 삶을 살아가기 쉽다. 

 

 

 

 

 

3학년 매스스터디 초기안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 건축학도 생활이 떠오른다. 설계 수업에서 우리는 매주 2-3번씩 자신의 작품을 교수님들에게 평가받고 피드백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행하고 싶은 방향과 교수님이 생각하는 방향이 같을수도, 다를수도 있다. 만약 생각이 다르다면 우리는 내 생각을 교수님에게 설득하거나 교수님의 의견대로 진행하는 선택지가 생긴다. 이 둘 선택지 중에 정답은 없지만 건축을 배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교수님에게 설득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한 학기 설계를 편하게 가기 위해서,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교수님의 방향도 좋은 것 같아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교수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빈도가 많을수록 내 작품이 내가 원해서 하는 작품인지 교수님 작품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건축학도들이 건축에 흥미를 잃고 전과를 하거나 졸업 후에 다른 분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이유로 그러는 경우가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이야기 또한, '조언'이라는 포장지를 싼 이야기일 뿐이다. 자신에게 고뇌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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